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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영화 세 줄 요약:

    • 몰입도가 뛰어나다.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악역을 악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 정교하다기보다 적당히 허술하게 내용이 전개되어 아쉽다.


좀 더 생각해 본 감상평(약스포주의):


영화 속 이야기는 아주아주 케케묵은 주제를 품고 있다.


1. 인간의 자유는 무조건적으로 보장받아야 할까, 아니면 통제받아야 할까? 무엇이 개인에게 혹은 사회에게 더 바람직한가? (자유론, 1851년)


2. 이렇게 인구가 계속 늘다보면 큰일나지 않을까? (인구론, 1798년)


이 두 개의 주제는 괄호 속의 고전으로 대표되는데 오늘날 해당 고전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그 어느 때보다 개성을 강조하는 시기를 맞아 자유론에 대한 평가는 후한 반면, 인구론은 제대로 예측한 게 없다는 박한 평가를 받는다. 사실이 그렇다. 인구론을 쓴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에 순풍순풍 아이를 낳다보면 망하기 십상이라고 경고했는데, 정작 까보니 자본주의 파워가 너무 엄청났다. 엄청난 기술 발전이 식량 생산력을 이끌었고 인류는 역대 최고 부자를 끊임없이 갱신했다. 덕분에 "세계의 문헌 중 가장 멍청한 책" 이라고 인구론을 비웃은 경제학자까지 있다. 


이렇게 이미 결판이 난 듯한 이 주제를 '월요일이 사라졌다'의 감독이 다시 끌고 나왔다. 감독은 극심한 인구 과잉을 막기 위해 오직 한 명의 자식만이 허용되는 세계를 이야기한다. 무려 일곱 쌍둥이로 태어나버린 주인공 무리가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사회에 맞서 결국 승리하는 뻔하지만 재밌는 이야기. 그런데 이상하게 웃고 넘길 수가 없다. 영화 속 배경이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고 단정짓기엔 현실이 너무 유사한 까닭이다. 영화 맨 처음에 나오는 기후 변화, 제3세계의 빈곤, 유전자조작, 또 인구급증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영화처럼 현실 상황이 악화되어 인류가 직접적인 위기에 처한다면, 인구론은 사회 제도로써 부활해야 할까? 


영화에서는 해피엔딩을 위해서인지 또다시 인구론을 죽이고 자유론의 손을 들어줬다. 살아남은 주인공들은 개성있는 이름과 스타일을 되찾는다. 하지만 감독은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주인공들은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인간이 아닌 삶' 이라고 자조하고 케이먼은 투스데이에게 "너희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다른 아이들의 것을 빼앗았는지 아느냐" 며 비난한다. 또 먼데이의 남자친구와 작품 결말부의 뉴스의 앵커는 숨어있던 아이들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의 빈곤층임을 언급한다. 즉, 아이를 낳는다는 게 과연 '개인의 자유' 의 범주에 속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화처럼 극단적인 세계가 아닌 오늘날에도 아이들이 태어나 고통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아이들은 고통스럽지 않았어.." 라고 되뇌이는 케이먼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케이먼의 모습은 적어도 나에게는 악역이 아니었다.


1798년의 인구론이 결론적으로 바보취급 받았듯이 2018년의 인구론도 엄청난 기술 발전 속에 희미해질까?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끝없이 늘어진 아기들의 모습, 또 그 울음소리에서 오로지 해피엔딩만을 느낀다면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혹은 어리석은 사람일테다.



기타 잡썰

    • Sibling 을 "쌍둥이"라고 오역한 것은 많이 아쉽다. 자막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경우 오직 쌍둥이들만 그 푸른빛 관 속에서 죽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 20살도 아니고 30살까지나 잘 참았으면 그대로 더 살지.. 라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가정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그동안 응어리진 마음에 불을 붙인 게 아닌가 싶다. 카렌 셋맨의 삶과 새로운 가족은 양립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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